극장 소개 - 아트나인(이수역)
오랜만에 아트나인이라는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이곳은 이수역 메가박스에 위치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독립영화관 중 하나입니다. 제가 아트나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곳이 정말 영화를 위한 영화관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극장은 상업적으로 돈을 벌고 싶어 영화 상영 전부터 다양한 광고로 피로를 더하는 데에 반해 이곳은 상업적 광고를 일절 넣지 않습니다.
그저 영화 시작 전에 아트나인에 대한 정보와 곧 아트나인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에 대한 얘기뿐입니다. 돈을 벌고 싶었더라면 광고 몇 개를 넣어도 부족할텐데 이러한 달콤한 유혹을 뿌리친 것에 대해서 저는 아트나인만이 가진 영화에 대한 진심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극장이 영화에 대해 신중하고 의미있게 선택한 것을 알 수 있고 개봉되는 작품들도 고전 명작들이나 작품성이 괜찮다고 알려진 영화들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꽤 많은 작품을 보았지만 재미는 조금 상업적인 영화에 부족할지라도 단 한 번도 의미가 없던 영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관은 저에게 늘 마음이 어렵고 쉬고 싶을 때면 저절로 발길이 닿게 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영화 소개
제가 이번에 시청한 영화는 바로 이상일 감독의 유랑의 달입니다.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저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요. 여러분은 유랑의 달이라는 제목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셨을까요? 저는 이 제목을 보고 바로 와닿지 않았고 나름의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유랑의 달이란 유랑극단처럼 떠다니는 달을 의미합니다. 떠다닌다는 것은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안전한 거처가 없고, 무리가 없으며, 소속된 공간이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렇기에 이 달은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홀로 외로운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곧 영화에서 주인공들에게 벌어지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이 책은 아홉 살 여자 아이와 고등학생인 남학생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부모에게 버려진 여자아이 사라사는 이모의 집에 얹혀 삽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매일 중학교 사촌 오빠에게 성취행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집에 가기 싫어했고 우연히 놀이터에서 고등학생인 후미를 만나게 됩니다. 후미는 혹시 갈 곳이 없다면 같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고 사라사는 후미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후미와 사라사였지만, 없어진 사라사를 이모네가 경찰에 실종 신고 하였고 결국 후미는 체포되어 아이를 납치했다는 이유로 소년원에 가게 됩니다. 이 사건은 고등학생이 어린 아이를 납치, 감금했다는 것으로 일본 전역에 퍼지고 여자 아이는 남자 학생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보도가 세간을 떠들석하게 합니다. 이 사건은 그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인이 되었을 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서로에게 끌림을 느낍니다.
도덕적 딜레마
이 영화에서 다루는 문제 의식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필자로 하여금 계속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후미는 소아성애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태가 일반 성인 여성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고 느꼈고 그렇기에 자신을 순수하게 바라봐 줄 아이를 좋아한 거 같습니다.
그래서 갈 곳이 없는 사라사를 재워주고 집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세간에 등장하는 추악한 아동성애자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저 사라사에게 안식처와 먹거리를 제공해주었고 그녀가 하고 싶어하는 것(놀이나, TV 만화 시청)을 하게 해주었으며 어떠한 성적인 터치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사라사가 행복해 하기를 바랐고 진심으로 그녀가 그녀 자신을 존중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렇기에 사라사는 성인이 되서도 후미를 잊을 수 없었고 자신 때문에 범죄자가 된 그에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 둘의 상황과 사랑은 영화에서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처절하게 비춥니다. 저는 이 둘의 재회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이것이 아름답게 포장되어도 후미는 소아성애자가 맞습니다. 소아성애자는 사회적으로 용인받을 수 없을 뿐더러 그것에 대한 각종 범죄도 끊이질 않습니다. 당연한 마음이지만 저 또한 소아성애자를 볼 때마다 거북함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소재는 그러한 불편함도 있지만 소아성애자가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보기 좋게 느껴졌습니다. 사회에서 늘 무시받고 불안했던 사라사는 후미를 만났을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고 그들의 사랑이 드러나는 것은 둘 다 성인이 되었을 때라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두 가지 마음, 소아성애자의 사랑을 응원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저것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봐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이것은 곧 도덕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딜레마였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답을 찾고자 하였고 어느 정도 정리된 답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분명 사랑받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사랑을 해 나가고 서로를 치료해 가는 과정이 보기 좋게 느껴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에 대해 결과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과정이 어쨌건 후미라는 사람이 사라사를 데려온 것은 자신의 성욕에 이끌려서였습니다. 자신이 소아성애자인지 몰랐다면 그것은 죄가 좀 덜 할 수 있으나 자신의 정체성을 안 상태에서 그녀를 자신의 집에 들인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후미의 집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맞지만 그가 그러한 욕망에 이끌린 것도 부정할 수 없기에 그의 행동이 아무리 사라사가 행복을 향한 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결과적으로 영화를 통해 느낀 것은 사랑의 다양한 형태입니다. 영화의 나오는 내용들이 도덕적으로 옳지는 못할지라도 후미와 사라사의 사랑은 깊었으며 진실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분명 그곳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을 일반적이지 않고 이상하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배척은 또 다른 혐오와 범죄를 낳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포용하는 형식이 후미와 사라사를 응원하는 것처럼 상처가 있고, 장애가 있고, 어떠한 조건 때문에 정상적인 사랑을 못하는 사람들끼리 사랑을 하도록 허용하는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분명 잘못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기보다 그들이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끔 관심과 사랑으로 그들을 대해야합니다. 그들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닌 사회로 이끌고 그들이 정상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유랑의 달이 있는 이유는 머물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라사를 위한 거처를 후미가 만들어준 것처럼,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후미와 사라사를 위한 거처가 그들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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